±3%

1000VDC

지름 19mm

길이 39mm

연인관계에 있는 여자가 남자에게 말을 할 때는 직장에서 브리핑하듯 말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속삭임과 다소 느린 듯한 스피드를 특징한다. 이 특징은 보다 친한 관계일수록, 또 보다 긴밀한 순간일수록 더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동물의 왕국에서도 이런 식의 관찰들이 수두룩하다. 원숭이, 강아지, 호랑이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모든 포유류의 짝짓기에는 속삭임 투와 다소 느린 듯한 어투가 동원되는 것 같다.

헌데 오일콘덴서가 그 속삭임과 다소 느린 듯한 어투를 연상시킨다. 어찌 보면 회로나 녹음정보의 개성을 약간 완화 또는 완충시켜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똑같은 오일, 즉 비빔밥에서 참기름이 하는 역할과 매우 비슷하다. 참기름은 각종 나물의 개성을 약간 정도 사라지게 함으로써 전반적인 이음매를 매끄럽게 해주기 때문이다.

오일콘덴서가 갖는 약간의 얼버무림 또는 약간의 지연은 끊어지지 않는 악기, 대표적인 예로서 현악기의 재생에서 보다 유리할 수 있다. 같은 이유에서 반주의존도가 낮은 가창력 위주의 여가수에서 보다 유리할 수 있다. 더불어 쭈삣쭈삣 날이 많은 옛날 녹음의 재생에서 보다 유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오일콘덴서는 ‘찰짐’, ‘예쁨’, ‘탐미적’ 등 중음대역과 관련된 많은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고음대역에서의 잔향 표현력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무대의 크기가 다소 축소되는 듯한 감이 뒤따르곤 한다. 그러니까 오일콘덴서와 일반적인 필름콘덴서와의 비교는 20W 미만의 진공관 앰프와 100W 이상의 TR 앰프를 비교하는 것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

오디오의 흐름 또는 오디오용 핵심부품의 흐름이 이렇다고 할 때 우리는 그 둘의 장점만을 취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진공관의 따뜻하고 예쁜 결을 갖되 동시에 빠른 스피드와 커다란 스케일, 그 무대까지도 넓게 조성되는 것 같은 것이다.

문도르프는 2000년대 초 Supreme SilverGold Oil을 출시했고, 10년쯤이 지난 2013년 Supreme Evo SilverGold Oil을 또 출시했다. Evo는 당연히 Evolution의 약자로서 진화 내지 발전을 가리킨다. 대체적으로 신제품에 Evo 자가 붙을 경우 내용이 보다 선진적이고 가격도 더 고가화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문도르프의 경우 대규모 가전업체들이 쓰는 Evo와는 다소 다른 것 같다. 대부분의 오디오가 그러하듯 Evo의 음질이 특별히 선진적이라 말하기 어렵고, 가격도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즉 문도르프가 Evo 자를 붙였다고 해서 무조건 발전적인 부품일 것이라고 믿지는 말자는 것이다.

Supreme SilverGold Oil과 Supreme Evo SilverGold Oil을 비교하면, 첫째 용량군의 차이가 있다. 즉 Supreme SilverGold Oil이 0.01uF에서 10uF까지 제작되는 반면, Supreme Evo SilverGold Oil은 1uF에서 47uF까지 제작된다. 아마 기기를 제작할 때 보다 많이 쓰이는 소용량, 즉 0.22uF나 0.47uF 등의 소용량에서는 Supreme SilverGold Oil이나 Supreme Evo SilverGold Oil이 의미있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둘째, Supreme SilverGold Oil과 비교할 때 Supreme Evo SilverGold Oil은 (초)고음대역에서의 잔향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피어오른다. 그 정도는 거의 필름콘덴서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해서 보다 찰짐, 보다 농밀함, 보다 촉촉함 같은 오일콘덴서로서의 매력을 갖되 상당 정도 입체적인 무대까지 가능하다. 내가 판단할 때 Supreme Evo SilverGold Oil의 이런 능력은 오일콘덴서의 잔화라고 봐야 합당하다. 하지만 오디오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취향이 중요하다. 즉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선이 약간 가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것 같다. Supreme Evo SilverGold Oil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오일콘덴서, 전반적으로 두툼하게 다가오곤 하는 그 오일콘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가늘다고 해서 힘이 약한 것이 아니고 두툼하다고 해서 힘이 좋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디오에서는 선이 다소 가늘면 힘도 다소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해서 이 힘을 놓고 비유할 때, Supreme SilverGold Oil이 건장한 남성이라면 Supreme Evo SilverGold Oil은 몸매관리를 잘한 여성이 될 것 같다. 물론 이런 비교는 둘끼리의 상대적인 비교일 뿐 Supreme Evo SilverGold Oil 역시 Supreme 시리즈인 만큼 다른 업체의 오일콘덴서보다는 기분좋게 힘이 있다. 그러니까 그 여성은 연예인 쪽 여성이 아니라 스포츠 스타 쪽 여성이라고 해야 더 맞다.

요즘은 기기 값이 너무 비싸다. 해가 바뀔수록 당연히 더 비싸질 것이다. 해서 마니아의 대부분은 가성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헌데 가성비가 높다는 기기들은 십중구 거칠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오일콘덴서를 다시 보게 되는 한 가지 이유가 된다. Supreme Evo SilverGold Oil은 스피커 시스템의 트위터 쪽에 매달아도 아무런 문제없다. 이미 말했지만 초고음대 특성이 괜찮기 때문이다.

기기 자체를 개조하거나 DIY 하는 방향도 있다. 헌데 이 기기에서는 Supreme SilverGold Oil과 Supreme Evo SilverGold Oil 간에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오일콘덴서로서의 음색이나 음결을 얻되 어떤 힘까지를 원한다면 Supreme SilverGold Oil이 더 괜찮아 뵌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힘은 덜하지만 청감상의 광대역까지를 원한다면 Supreme Evo SilverGold Oil이 더 괜찮아 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