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VDC

지름 51mm

길이 41mm

문도르프는 1980년대 초부터 오디오파일러란 콘덴서를 만들었다. 이것은 당시 기준에서 꽤 유명했던 솔렌보다 약간 비쌌고, 음질은 약간 부드러운 정도였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2000년 무렵 문도르프는 슈프림이란 본격적인 하이엔드 콘덴서를 출시했다. 그리고 2-3년간에 걸쳐 슈프림 실버오일, 슈프림 실버골드, 슈프림 실버골드오일 등으로 이 슈프림 라인을 체계화했다.

슈프림 콘덴서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선이 다소 굵고, 해서 기분좋게 힘이 붙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대체적으로 힘이 붙으면 소리가 앞으로 쏟아진다거나 좌우 채널 사이 음폭이 좁아진다거나 그러면서 중음대역 전반이 거칠어진다거나 하는 반대급부가 뒤따르곤 한다. 하지만 슈프림 콘덴서들의 경우 그런 게 없다. 오히려 더 매끈해지며 음폭마저 더 넓어진다. 슈프림들의 이러한 장점은 오늘날의 OP 위주의 기기상황, 즉 다소 밋밋해지기 쉬운 그 기기들의 재생음에 어느 정도의 입체감을 심어줄 수 있었다. 기기 업체든 스피커 시스템 업체든 사실 이 때문에 문도르프의 콘덴서들을 채용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슈프림 콘덴서 출시 이후 십수년 만에 문도르프는 'EVO' 자가 들어가는 콘덴서들을 또 출시했다. 애초 에보 콘덴서는 오디오파일러 등급을 대치하기 위한 시도였지 싶다. 이를테면 투명함을 보강하기 위한 시도였지 싶다. 하지만 그 결과가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문도르프는 기존의 슈프림까지 에보化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문도르프는 기존의 슈프림 콘덴서 라인에 Classic이란 말을 붙였다. 즉 Supreme은 Supreme Classic으로, Supreme SilverGold는 Supreme Classic SilverGold로, Supreme SilverGold Oil은 Supreme Classic SilverGold Oil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더불어 새롭게 에보化되어 출시된 슈프림은 Supreme Evo, Supreme Evo SilverGold, Supreme Evo SilverGold Oil이라고 분류했다. 그러니까 문도르프는 슈프림이란 말을 좋아하고, 에보란 말도 좋아하는 것 같다.

‘에보’는 더 치밀하고, 이를테면 초고음대역 쪽으로 확 뚫린 듯하다는 특징이 있다. 해서 청감상 약간 가늘게, 또는 약간 힘이 빠진 듯하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기존의 입체감 수준은 거의 변함없다.

오일콘덴서는 음질적으로 더 윤기 있고, 더 촉촉하다 싶은 소리를 들려준다. 해서 현악기나 목소리 재생에서 특히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초)고음대역에서의 끝자락이 약간 무디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오일콘덴서에 대한 득과 실 내지 호불호가 갈릴 만한 부분이다.

‘에보’는 더 치밀하고, 이를테면 초고음대역 쪽으로 확 뚫린 듯하다는 특징이 있다 하는 말을 방금 전에 했다. 결과적으로 에보는 오일콘덴서일 때 더 매력적이다. ‘에보’의 단점과 오일콘덴서의 단점이 서로 만나 상쇄되고, 해서 장점들만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슈프림 클래식 / 슈프림 에보

슈프림 클래식 실버골드 / 슈프림 에보 실버골드

슈프림 클래식 실버골드오일 / 슈프림 에보 실버골드오일

문도르프의 슈프림 콘덴서들은 이렇게 클래식 라인과 에보 라인으로 이원화되었다. 헌데 이 와중에서 새롭게 구축된 라인이 있다. 그것은 슈프림 에보 오일 라인이다.

이미 말했지만 슈프림 콘덴서, 그러니까 슈프림 클래식 콘덴서는 무엇보다 굳건한 힘을 특징한다. 이러한 힘이 없다면 슈프림 클래식 특유의 입체감도 불가능할 것이다. 2000년대 초 문도르프가 이러한 슈프림 클래식을 오일화하지 않은 것은 이미 말한 그 뭉뚝해짐 때문이었지 싶다. 해서 오일콘덴서화를 할 때 어떤 개방감을 위해 실버나 실버골드를 활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물이 슈프림 클래식 실버오일 내지 슈프림 클래식 실버골드오일이었지 싶다.

하지만 에보화되면서, 다시 말해 에보 개발을 위한 기술을 슈프림 클래식에 적용하면서 슈프림 에보 오일이 완성되었다. 말하자면 흠잡을 데 딱히 없는 극강 가성비의 하이엔드 콘덴서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소리를 들어보며 내가 판단할 때 문도르프를 대표하는 콘덴서는 앞으로 슈프림 에보 오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플래그십 격인 슈프림 에보 실버골드오일이 그 유연함에 있어 약간 더 우수하지만 그 가격까지를 생각할 때 그렇다. 

슈프림 에보 오일은 힘과 질감과 개방감을 골고루 갖고 있다. 그것도 비교적 만만한 가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