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900 Signature에는 12awg 굵기 4가닥이 들어 있고, 그 한 가닥에는 다시 40여 가닥의 심선이 들어 있다. 피복의 유연함과 깨끗한 마감, 튼실한 완충대책 등 하이엔드 케이블로서의 기초는 완벽한 수준이므로 거론하지 않는다.

어떤 케이블로 바꾸니 저음대역이 빵빵해졌다 하는 말이 있다. 아니면 그 반대적인 말, 이를테면 고음대역이 화사해졌다 하는 말도 있다. 그만큼 매칭 따라 쓸 일이지만, 그러나 나는 이런 선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그런 말들의 의미를 따져보면 결국에 대역간 밸런스가 달라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해 저음대역이 빵빵해졌다는 것은 고음대역이 반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해 음악이 장마 때처럼 눅눅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고음대역이 많아졌다는 것은 저음대역이 반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해 40대 여가수가 여고생처럼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선에 따라 이렇게 대역간 밸런스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변화될 때 짧은 순간 특정 몇몇 곡이 아니라 긴 시간 여러 장르 여러 곡을 들어보면 십중구 득보다 실이 많아진다.

세상사 꼴값 한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 이 말은 상대를 부정적으로 싸잡을 때 쓰곤 하지만 경험컨대 말 자체는 맞는 말인 것 같다. 즉 싸가지가 없게 생긴 사람은 확실히 싸가지가 없다. 또 착하게 생긴 사람은 확실히 맘 씀씀이가 곱다. 만져봤을 때 SS-900 Signature는 특별히 딱딱하지도 않고 특별히 물렁하지도 않다. 또 특별히 굵지도 않고 특별히 가늘지도 않다. 이런 식으로 생긴 게 두루두루 중립적이다. 요즘 인터넷을 켤 때면 ‘인생 한 벌’이란 옷 광고문구가 뜰 때가 있다. 나는 SS-900 Signature 역시 이런 문구가 어울릴 만한 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인생 한 줄’쯤이겠다.